핫글

영화사워너브라더스의아들.jpg

!
zack-snyder.jpg

그의 이름은 잭 스나이더



IBAzEj3.jpg


.....

2019년까지.. DC 유니버스의 세계관을.....



30년 인생..마지막 얘기 들어주실분... 31년 산 남자다.이 긴 글을 모든사람이 읽어줄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그냥 단 한명이라도.. 나를 이해해줄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이제 돈도.. 사랑도.. 가족도..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은 쓰레기 인생을 마무리 하고싶다.그러기 전에 누군가가 나의 얘기를 한번쯤 들어줬으면..정말 망한인생인지.. 아닌지..그런데 가슴속에 남아있는 뭔가 모를 덩어리들이 떼어지지 않는다..내가 저 어딘가로 가기전에 마음속의 얘기를 다 던져버렸으면 해서.. 난 3~5살때 부모님이 이혼하고 새엄마라는 사람이 들어왔는데 새엄마가 친엄마인줄 알고 살았다. 이혼사실을 모른채..위로는 형과 누나2명이 있었는데 형과 누나들의 괴롭힘과 엄마의 차별아래10살때쯤 알아버렸다.. 이집에서 내가 왜 고통을 받는지 한예로  어렸을때 식사를 할때면 매번 눈치를 받았다.. 조금만 먹으라고항상 반공기만 먹고 밥상을 떠났다 그러다 새엄마라는 사람이 일하러 나가고나면 밥통을 열어 밥을 먹는데 반찬은 고추장만 찍어서 먹었던 기억이 있다그러다 새엄마라는 사람이 뭔가 놓고 갔는지 집에 다시 들어왔다가 그 광경을 걸려버렸다빗자루몽둥이로 머리가 띵하게 맞아본 경험이 있는가? 그렇게 맞으면서 8살짜리 아이는 경기를 일으키며 놀라 먹었던 밥을 다 토하기에 이른다..새엄마라는 사람은 8살짜리 아이에게 토한걸 손으로 다 주워 먹으라고 명령한다..눈물로 잘못했다 호소하며 빌어보지만 돌아오는건 매질뿐..결국 아이는 방바닥에 소변까지 지려버리게 된다..그외에 한겨울에 팬티한장없이 벗겨진채로 집앞에서 서있기 자기 아들,딸한테는 주던 용돈을나는 500원짜리 받아본적도 없다.형이란 사람은 때리고, 이불뒤집어 씌워 숨못쉬게 하는 장난은 매일누나라는 인간은 자기 가슴이 커져야 한다며 안방에 데리고 가 자기 가슴을 빨라고 시켰다어린 10살도 안된 아이한테.. 그런 모진 일을 시키는 집안이었다..난 하소연할곳이 없었다.유일한 버팀목인 아버지란 사람은 여자의 치맛바람에 미쳐 모른척했다.. 나는 더이상 버틸수 없어 본격적인 가출을 결심했다.그전 7살때도 가출한적이 있다.. (내 희미한 기억에 유치원유니폼(?) 때문에 어떤 아주머니께 걸렸지만)가출후 난 비행청소년이 되었다~ 필요한 돈을 가지기 위해 도둑질도 했고, 빈집도 털어봤다그러다 구금상태로 법원의 재판을 받게 되었고, 소년 보호시설로 6개월 처분을 받고 들어왔다.(소년교도소가 아닌 민간시설의 보호소) 13살때 들어간 민간교회시설 나와 같은 처지의 청소년이 많았다~거기서는 비록 자유는 구속되지만 배고프지않게 많이 먹을수 있었고, 행복했다..6개월이내에도, 그뒤에도 나의 부모는 한번도 찾아오지 않았다.. 나는 집에 돌아가는것보단 이곳에서 더 살고 싶었다그렇게 가족과 연락을 안하고 산지 2년..나는 가족이 없다 생각하며 살았다.. 15살때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이 처음 들었고검정고시 준비를 했다 15살때 중학교 과정을 건너뛰고 고등학교 입학이 하고 싶었다.. 나는 학창시절이 없었으니까1년여간 남는 시간동안 배달일을 하며 돈을 모았다그렇게 17살때 입학을 했고 18살부터는 교회에서 나와 독립하여 살았다. 학교가 끝나면 매일 알바를 했고, 좋은 담임선생님을 만나 학비도 일부면제받고, 나를 잘 지도해주셨다고등학교 3년동안 나는 정말 행복했다..그시절 만난 나의 친구들은 내게 보석같은 존재들이다..내가 어떤 모습이던 어떤 욕을하던 어떤 투정을 부려도 다 받아주고 이해해주는..그런 친구들 말이다..대학은 못갔다.. 2007년?2006년? 그때 학자금대출제도가  있었다..그러나 미성년자인 나에게 학자금대출절차는 부모의 동의였다.부모에게 인터넷뱅킹 가입 동의부터 받고오라고 하더라..그래서 6년만에 집을 찾아갔다.. 대학을 가고 싶은데 대출동의 부탁드린다고..돌아오는 대답은 니가 못갚으면 나한테 돌아오는거 아니냐는 새엄마의 모진 말뿐..자기딸도 대학가고싶었는데 어려워서 못갔다는.. 고로 너도 못가야한다는 말에 그냥 발길을 돌렸다.. 나는 이것저것 일하다 22살때 입영통지를 받고 군대를 갔다일병이 될 무렵 부사관 복무제도가 있다는 것을 알았고부사관에 지원해서 부사관을 복무했다.내인생에서 가장 후회되는 한부분은 바로 이때가 아닌가 한다.매월 정해진 날 월급이 들어오고 의식주를 해결해주니 이보다 좋은곳이 어디있는가..초기 2년정도는 착실하게 적금도 하고, 열심히 살았다.그러다 2년뒤에는 적금도 깨고 그돈으로 매일 술먹고, 유흥생활을 하고 결국 전역할때는 퇴직금 천만원이 전부였다. 전역후 이일 저일하며 영업직을 했다.. 나같이 못배우고 없는 사람은 영업직밖에 없다고 너무 쉽게 생각했다..영업직 특성상 수입이 일정치 않으니 수입이 없을때는 대출을 썼다..그러다 결국 개인회생이라는 극단적인 상황까지 가버렸다..개인회생절차를 통해 다시한번 잘 해보자라는 생각으로 들어간 다른 회사..그곳에서는 벌이가 좋았다~ 능력도 인정받아 1년여만에 말단에서 팀장까지 올라갔다비록 아무 혜택없는 허울뿐인 감투였지만, 내 밥벌이는 충분히 되었다.그때 나이가 29살이니.. 너무 늦었다면 늦었겠지.. 집 퇴근 집 퇴근 가끔 친구들과 술한잔 , 회사에서의 회식..난 항상 가족에 대한 그리움? 뭔가 부족함이 있었다.. 나의 가족을 빨리 만들고 싶은 그런 바램이 있었다여자를 사귀어보려고 많은 노력을 했었다. 친구들과 소개팅도 해보고, 헌팅도 해보고, 앱도 써보고그러나 결혼하고 싶은 여자는 못만나봤다.. 그러던 중 회사에 동갑내기 여자직원이 입사했다.. 첫눈에 반했다.. 연극영화과를 졸업했다는데 키는 168정도의 섹시한몸매, 얼굴은 너무 예뻤다.성격은 밝고, 활발하며, 애교있고, 귀여운 모습이었다.작년 1월에 처음보고 2개월정도 지켜보다가 3월부터 본격적으로 짝사랑했다이 여자는 투잡을했다. 회사가 9시반부터 6시까지인데 8시부터 새벽 2~3시까지 투잡을 한다는 것이다..이여자를 만나려면 새벽에 가야 잠깐 볼수있을까 말까.했다그리고 회식을 하면 많이 취했다. 회식 끝난후 사귀지도 않는데 내가 데려다주고 싶었다걱정되니까.. 집에 데려다주려고 집근처에 오면 어느아파트인지 몇동몇호인지 안가르쳐준다완전 취한상태인건 확실한데 집을 안가르쳐 준다그래서 모텔로 가서 재웠다.. 덮치고 싶었지만 우린 사귀지도 않는데 그냥 옆에서 마음참고 같이 잠만 잤다그중 알아서는 안될 것을 알아버렸다..우연히 울리는 그녀의 가방안 휴대전화.. 예를들면 과일-홍길동 이렇게 저장된 남자번호였다그 휴대전화 옆에있던 전단지는 과일에서...라는 Bar 전단지 였다..아 투잡이라는게 바였구나.. 남자한테 번호도 알려주는구나.. 그러나 나만 알고있기로 했다.. 티내지 않기로.. 결국 투잡은 그만두었다..그래서 난 괜찮았다.. 사랑하니까 그만뒀으니까 다 이해해할수 있었다.너무 들이대지는 못했고, 옆에서 잘챙겨주고 가까워지려고 노력했다..그러다 6월에 사귀자고 고백했고 거절하더라자존심이고 뭐고 버리고 후에 다시 고백해서 받아줬다하늘을 날아갈것 같았고, 너무 행복했다 이여자와 결혼하고 싶다는 생각이 너무 많이 들었다그러나 사귀는 조건은 한가지 사내연애를 밝히지 말자는것난 동의했다. 1년뒤에는 공개해도 좋다기에 난 괜찮다 하였다몰래 사내연애가 시작되었고 우리는 너무 좋았고 행복했다.나는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미래를 함께하고 싶다고 자주 말했다.. 나를 정말 하나부터 열까지 세심하게 잘챙겨주었으니까요리도 잘했고, 내집에 오면 하나부터 열까지 잘 챙겨주었다..나의 가정사를 전부 오픈했고, 여자친구는 가슴으로 이해해주었다.여자친구의 부모님께 정식으로 인사드리고, 진지하게 만나고 있다고 말씀드렸다.부모님의 생신때도 찾아뵙고, 여자친구 동생 결혼식도 같이 가서 친지분들께 인사드리는등 여자친구는 나도 남친 이렇게 인사시키고 이런적은 처음이라고 느낌이 묘하다고 했었다.그러나 둘다 영업직.. 힘들었다.. 난 .. 돈이 많이 없으니까..여자친구는 소비가 심했다.. 20만원씩 하는 네일을 주기적으로 하고, 음식도, 노는것도, 비용은 생각지 않았다..옷이며, 쇼핑을 자주했고, 마사지도 자주 받으러 다녔다..그러나 그게 내돈이던 니돈이던 상관하지 않는 여자였다.. 서로서로 잘내는 ..내가 원하는 여자의 마인드였으니까 좋았다그러다 대출금은 점점 쌓여갔다.. 물론 내 대출만 받아서 그랬다면 천하의 __이라 욕하겠지만여자친구의 대출도 같은 높이로 올라가고 있었다... 서로 대출 받아서 서로 같이 썼으니 둘다 욕먹어야 싸지나는 허심탄회하게 말했다 우리가 상황이 이러니 우리 앞으로 소비도 줄이고 통장도 하나로 해서 관리하면서 살자여자친구는 동의했다 여자친구의 차가 있으니 내차는 처분하기로 했다 서로 지역이 한시간거리니 내가 연고는 없지만 너의 집앞으로 이사를 가겠다다 오케이 였다 이제 준비만 하고 있었는데 더이상 돈이 없었다일이 잘되지 않아 월급이 없었다 그러나 점점 돈은 궁핍해져가고 대출이자의 벽은 높아만 가고 여자친구는 견딜수 없었나 보다우리 각자 해결하자 그리고 헤어지자고서로 돈없을때 헤어지는 게 맞다고..나는 밤낮으로 일해도 괜찮다고 했다 너만 있으면 아무리 힘들어도 견딜수 있다고 했다니가 없으면 난 의지를 잃어버린다 너와 함께할거라고 생각했는데 미래를 준비못한 내잘못이다앞으로 정신차리고 다른일로 우리 빚 다해결하면서 같이 이겨내자 했다여자친구는 너무 커보인다고 했다 우리의 빚이... 거절한다.. 5번 잡았다 울며불며..너없으면 죽는다.. 한번만 기회를 달라... 미래를 함께할수있을만큼 믿음과 확신을 줄테니 조금만 지켜봐달라고.. 애원했다.. 그녀가 내집으로 그녀의 모든짐을 가지러 왔을때도 울고불고 매달렸다 그러나 너무도 매정했다.. 그리고 난 버려졌다.. 돈없어서...아니지 돈이 없는게 아니고내가 그지같은 마인드로 살았기때문에 여자를 놓친거지..나는 이제 집도 무보증 월세35만원짜리 단칸방에 차도 없고, 직장도 없고, 잔고는 말일날 낼 이자 40만원이 전부..말일되면 내 잔고는 이제 0원이네..마음잡고 일해보려 했다.. 근데 아무 의욕도.. 용기도.. 힘도 .. 내게는 남아있지않아..인터넷으로 번개탄 몇개피워야 갈수있는지.. 어느공간에서 해야되는지 찾아보고 있는 내가 너무 한심하지만..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가더라도 아무도 개의치 않을것만 같아서  방법은 이게 최선인것 같아.. 내일되면 마지막으로 한번도 본적없는 나의 친어머니를 찾아가보려해..주소를 알기위해 초본을 떼어봤어.. 직계가족은 뗄수 있다고 해서 얼마전에 주소를 알아뒀어..물론 연락처는 모르고..10살때 나에게 엄마라며 같이 가자고 했었는데 나는 이상한 아줌마라 여기며 뿌리쳤지..그후 20년동안 연락이 없었으니 아마 날 잊었을꺼야.. 그러나 가기전에 마지막 한번은 너무 보고싶다..아버지란 사람은 지옥에서라도 보고싶지 않지만.. 엄마는..엄마 라고 한번만 불러보고 밥이나 한끼 하는게 한번만 나를 따뜻하게 안아줬으면 얼마나 좋을까..내가 지금 가진 마지막 소원인것 같아.. 부디 내일 찾아갔을때 뵐수 있기를.. 혹여나 문전박대하더라고..울지 않고 슬퍼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가야겠다..마지막 넋두리라고 하나? 제 마지막 이야기 다 읽어주신 분이 있을까요..있으시다면 감사합니다.. 잊지 않겠습니다..내친구들...내 지인들.. 나를 아는, 내게 도움주셨던 많은 분들께 말하고 싶어요.."그 동안 감사했습니다. 좋은곳에 가서 먼저 편히 쉬고싶어요 다음 생이 있다면.. 꼭 같이 행복하게 살기를.. 바랍니다 "

아기사진스튜디오 부산유명한점집 입시 설명회 일정

Comments